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프랑수아 밀레 (문단 편집) == 논쟁 == 밀레의 그림에 대한 해석에서 간혹 논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사회 비판적인 철학을 가진 화가였기 때문이다. 그의 평소 철학과는 달리 만종이나 이삭줍기 등의 대표작들은 평화로운 외견상의 내용과는 달리, 그림의 배경은 역설적인 경우가 눈에 띈다. 이렇다보니 그의 그림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며 숨겨진 메시지를 찾으려는 비평가들이 생기게 된다. 한 예로, 후대의 유명한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는 만종을 보고 왠지 감자 바구니에서 관(죽은 아이의 관)이 느껴진다는 식으로 말하며 밀레가 단순히 "추수기의 풍요와 평화와 감사"같은 그림이 아니라 죽은 아이를 애도하는 기도를 올리는 부모의 모습을 그렸다고 주장 했다. 후대의 기술발전으로 그림에 대한 정밀 엑스레이 검사가 가능해져서 살펴보니 실제로 바구니 주변에 직사각형 형태의 펜 선이 있는게 확인되었다. 다만 이게 실제로 관을 그린것인지 단순히 구도를 잡기 위한 것인지는 불명. 흔히 스케치 전 구도를 잡기 위해 캔버스에 십자 형태의 펜 선을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십자가를 그렸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밀레 연구가들은 <만종>에 관한 이러한 주장에 별 근거가 없다고 여긴다. 아기의 죽음을 기리는 기도를 그리는 장면이라면 아무리 가난한 농민이라도 최소한의 장례에 필요한 의식은 갖추기 마련인데 그림 속 부부는 일하다 말고 기도를 드리는 듯 옆에 쟁기도 놓아두었고 그냥 밭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만종>에서 묘사되는 장면도 특별한 어떤 예식을 그린 게 아니라 당시 가톨릭 신자들이 하던 일도 잠시 중단하고 꼬박꼬박 바치던 [[삼종기도]] 중 저녁기도(오후 6시에 바친다)를 드리는 모습이며, 이는 당시 프랑스 서민들의 일상적 모습에 가깝다.] 또한 '이삭 줍는 여인들'의 이삭을 줍는 여인들은 수확이 끝난 후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 최하층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수확물은 원칙적으로 지주의 것이나, 떨어진 이삭은 예외였기 때문이다.[* 배경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수확풍경과 대비 된다.] 여인들의 모자와 옷의 색은 파랑, 빨강, 흰색의 프랑스 혁명의 깃발 색을 상징하며[* 현재 프랑스 국기] 멀리서 수확을 감시하는 감독관[* 혹은 지주]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식으로 그의 그림은 "다시 한번 쳐다보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회비판적 요소로 다시 보일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기에, 진정 화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두고 꽤 다른 해석 및 평가가 존재한다. [[분류:프랑스의 화가]][[분류:1814년 출생]][[분류:1875년 사망]][[분류:망슈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